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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부재가 느껴질 때

dancer on the keyboard 2019. 6. 23. 17:02

엄마가 없음이 아쉬웠던 아주 어릴 초등학교때 아니 학창시절 밖에 없다. 그것도 손에 꼽을 만큼 아주 드물게, 

입학식 당일, 
수업 마칠 시간쯤 내리는 소나기에 교실 앞에 우산을 가져와 기다릴 학부모를 기대하는 시간(물론 엄마 대신 다른 분이 오실 수 있지만 온 적은 없다),
운동회,
부모님 면담일. 

이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쉬운 엄마와 자녀의 순간이다.
이렇게 쭉 나열해보니 생각보다 많구나 싶다.

그래도 내겐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고모들 그 외 사촌, 친척들까지 있었기에 입학식날 함께 하는 가족 수도 많았고 물론 그 외 다른 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애정 많이 받으며 자라왔으니 다행스럽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라는 존재가 아쉬운 순간은 더 없지만 그래도 가끔 정말 어쩌다 가끔 있다. 

그 순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참으로 아끼는 가족들에게서부터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태아일 때 그녀의 뱃속에서 태동은 어땠는지, 힘차게 발길질 했는지, 그녀는 얼마나 살이 쪘었는지 
내가 태어날 때 얼마나 오랜 시간 진통을 헀는지, 그래서 얼마나 내가 그녀를 아프게 했는지,
내가 태어났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다른 엄마들처럼 '너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는지
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두 발로 섰을 때 어떤 벅찬 감정이었는지, 옹알이 시작하고 나서 뱉은 첫 단어는 무엇이었는지, 

그런 생활 속 처음 겪어보는 벅찬 감동들과 소소하고 잔잔한 행복에 대해 들어볼 기회를 놓칠 때, 내가 어땠는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조금 아쉽다. 

사실 이보다도 이러한 자녀의 이야기를 하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러움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한마디라도 더 하며 기뻐하고 설레하는 그녀들을 볼 때 나는 언제나처럼 이기적인 나처럼 '나는 어땠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이러한 어머니의 삶을 경험한 가족들에게서 자신의 자녀 이야기를 하며 웃는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엄마의 부재'를 경험한다. 

절대 내가 알 수는 없는 것들이다. 

가족들을 멀리하기 시작한 건 아마 내게 없는 부재를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멀리 하겠다는 내 결심이 흔들리지 않음에 감사를 느끼며, 햇살 좋은 이 낮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기뻐하게 된다. 

 

- 울산에서, 6월의 마지막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