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
우리는 자기의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즉 이분법적 사고로 모든 것을 구분한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그 기준의 중심에는 나와 다른 부류(그 부류가 여러 개로 나눠질 지라도), 이렇게 두 가지.
오랜만에 마주한 다름이 아닌 틀림을 주장하는 친구를 만났다.
어깨가 넓은 하얀 친구.
서로의 다름이 인정되지 않을 때 인정받지 못하는 상대는 슬플 수 밖에 없다.
물론 틀렸다는 주장보다는 낫겠지만,
그리고 다르기에 인정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틀린 사람으로 규정 짓는 것만큼 슬플 수 있을까.
다름과 틀림의 가장 큰 차이는
다름은 나와 다름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가능한 분류이지만 틀림은 그저 잘못된 것으로 규정됨에 있다.
틀리지 않으려 나라는 바다 물고기는 강물로 가야 한다. 분명 그러면 죽겠지.
하지만 강과 바다가 서로 다른 물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길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의 길 속에서 헤엄치다 만나는 그 장소에서 말이다 (물고기의 비유만으로는 맞지 않겠지만).
나는 너에게서 너를 너대로 인정하며 서로의 다른 부분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고,
너는 너대로 내가 틀렸다 느끼는 부분을 고치거나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고,
허나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나의 그 작은 고통도 고통이니 그 고통을 더 감싸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라고 묻는다면
다르기에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걸 알게 되니까.
틀리다면 그건 고치는 수정의 상황이 필요하고 그건 그 어떤 시간의 유예도 용납치 않으니 말이다.
웃긴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얗고 까만 친구 둘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