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20대 중반 흔들리던 내 미래에 한줄기 빛처럼 나타나줬던 백금 팔찌의 소유자.
20대 후반에 들어설 때까지 나를 인도해줬다.
강풍에 더 없이 지치고 흔들리기도 했으나 그래도 그의 손을 잡고 뒤따라가고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오늘 드디어 그렇게 나를 이끌어줬던 그의 손을 놔버린다.
잠시 놓는 것일지도 모르지.
떠난다.
남겨진 자는 할 만큼 역할을 했다. 떠나는 자를 붙잡기 위해 남겨져 있던 그 백금 팔찌의 소유자는 나를 회유하고 또 회유했다.
떠나기로 맘 먹은 자는 그의 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외면해야만 했다.
오늘 떠난다.
모든 게 처음이던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열정을 쏟아부었던 2년 반.
이제는 그러한 열정은 놓아버린 채 떠난다.
이런 열정을 다시 품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왜 떠나느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지금이 아니면 더 오래 걸릴 것 같기에, 혹은 그에게 익숙해져 언젠가 혼자 남겨질 후가 무섭기 때문에.
남겨진 자는 남겨진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잘 되길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
울지 말라는 인사와 함께.
떠나는 자는 모든 걸 이제는 과거로 남겨둔 채 떠나야 하기에 마음이 더 흔들린다.
헤어짐에 대해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 나는 또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안정적인 순간으로 바꾸고자 또 노력해야겠지.
오늘 이렇게 슬프긴 하지만 막상 내일이 되버리면 잊어버릴 그 많은 순간들.
어제 적응을 썼는데
남겨진 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 떠나는 사람이 있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혹은 떠나는 자를 안심시키고자.
떠나기 전엔 그 마음을 모를 수도 있겠지.
떠나서 곧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게 되면 많은 것들을 또 잊어버리겠지. 남겨진 자가 겪어야 할 그 고통도.
-2016.09.09. 흐린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