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즐거운 일들
세상에 즐거운 일은 언제나 예상치 못할 때 혹은 최선을 다하고 후회가 없을 때 생긴다.
어제의 즐거운 일은 갑자기 떠난 부산이었다. 안갔더라면 여름동안 한번을 수영도 못했겠지.
왜냐면 오늘 즐거운 일(반어법이다)로 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실려왔기 때문이다. 정말 세상은 모든 걸 예상할 수 없고 그래서 즐거운 인생이다.
지난 주는 8월을 맞이해서 겪어보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
감정의 교차로에서 내 감정을 건넬 수 있었던, 내 감정에 위로를 받았던 사람이 내게는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이상한 상황에 있던 사람이었고 그게 들통났었다. 웃기겠지만 (실은 웃기지도 않는다) 정말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이 또한 반어법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필요의 시기에 나타났던지라 그 교차로를 잘 건널 수 있게 도와줬던지라, 더불어 그럴 사람(이 일은 아니지만)으로 혹은 기대가 0에 귀결해서인지는 몰라도 웃음이 났고 밉지도 않았다. 여튼 즐거웠던 두 달 아니던가. 내게 필요했던 두 달이기도 하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딱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고 지금 내 왼쪽 다리는 상처투성이에 피부가 사라지기까지 했다. 얼마나 신기한 일이던가, 더불어 이 정도인 게 얼마나 다행이던가. 대수롭지 않다. 언제 이런 수술 한번 해보겠는가. 이런 일도 한번은 있어봐야 인생 아닌가. 나중에 늙어 이런 일 없으려고 이런 거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응급실에 온 지 세 시간이 지나가는 시점에 응급실 환자용 침대에 누워 고개만 들면 백색의 형광등을 보면서, 구급차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 보면서, 구급차 창문으로 지나가는 길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더 즐거운 일이 가득할지, 후회할 순 있어도 언제든 무슨 일이든 그게 (부모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다면 언제든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응급실에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라 그게 또 괜시리 맘이 쓰이고 생각이 나는 사람도 있고 어린곰에게 연락하고 싶다가도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피해를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피해준다는 생각 없이 일도 잘 하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 못 되나 보다. 이 응급실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혼자 멍하니 있다 선생님들과 농담 따먹고 노트북까지 꺼내 글을 쓰고 있는 날 보면 말 다한 거 아니겠나.
다시 오기 싫지만 한동안 이 하얀 백열등 아래 누워 있을 것이고, 그럴지라도 세상에 즐거울 일들을 언제나 또 해내보자.
세상은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다. 이번 아픈 사고 또한 너무나 놀랐고 더 무서울 수 있었지만 이 정도로 끝났으니 다행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더 큰 일이 아니기에 감사를 보내며 '운동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PT쌤의 말처럼, '또 해내보자'는 친구의 말처럼 뭐든 다 해보자.
즐거운 일이 얼마나 오려고, 얼마나 크고 신나는 일들이 오려고 이런 일을 또 하나 싶다.
- 건국대학교 병원 응급실에서, 202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