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어느 날 보고 싶어서 날 찾았던 너,
그 날은 안된다고 했는데 기억을 못한다고 화를 냈던 나.
그래서 당황하고 화냈던 너.
내가 필요했던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됐고,
내가 섭섭했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된 너,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
내 마음이 흔들리는 탓에 모든 게 다 흔들려보였다.
그래서 네 마음이 흔들려 보였고, 그 흔들림에 더 크게 흔들렸다.
흔들리기 싫어서, 서로 꽉 붙잡아주고 서로 응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내서 쑥스럽지만 함축적으로 소녀스럽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 어느 날 네가 날 찾았던 것처럼.
그냥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랬다.
네가 날 찾았던 날 화냈던 나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를 찾는 내게 너는 화를 냈다.
이게 바로 역지사지이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겉으론 절대 이해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
나는 내 평생 소원처럼 아직도 여전히 소녀인가보다. 그렇게 그의 말에 꺄르르 하고 그의 말에 부끄러워했으니 말이다. 수치스럽단 생각이 찰나에 들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겠지만 흔들리는 내 마음이었던지라 더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그 속상함을 드러냈다.
너는 내 의도를 몰랐기에 수치라는 표현조차도 해서는 안 될 말이라 생각했겠지.
정확히 내 마음을 말했음에도, 네가 화난 의미를 알았음에도 우리의 폭주하는 열차는 멈추는 제어장치가 고장나버린 듯이,
그렇게 계속 폭주하기에 바빴다.
역지사지.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고자 우리는 벼랑 끝에서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은 같은데, 그러니까 함께 힘을 모아 한 발만 안쪽으로 내딛고자 우리는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너는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을 말했지만,
네 마음도 말했지만,
그래서 이해하려는 내 마음도 쉽사리 그랬구나, 그게 아니였어 그럼 오해했어, 너도 오해했구나 라고 하면 되는데,
그저 나라는 꽃잎 위에 무거운 그 물방울을 네가 떨어뜨려주기를,
그렇게 차가웠던 그 물방울을 치워주기를 나는 바랬던 것 뿐이다.
서로 화해하고 미안하다 하기에 애매해지기 전에 그래서 우리 관계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
어제 밤 원했던 하얗고 까만 둘이서 하나처럼 엮이는 그 순간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역지사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마음이오.
서로 마찬가지인 그 마음을 쉽게 얘기할 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