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ancer on the keyboard
2009. 6. 10. 21:1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作
베르테르, 그의 슬픔은 무엇이었나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베르테르의 죽음은 그 시대에 많은 혼란과 충격을 준 것이다. 단지 하나의 글일뿐인데 어마어마한 힘이 나타났다. 역시 글의 소중함을 느낀다.
괴테가 그저 사랑에 대한 글만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처음부터 너무 무언가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자유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로테뿐이며, 로테의 피아노 연주는 그를 자유 그 이상의 무언가를 획득한 듯이 만들어 준다. 그의 불안감은 나로 하여금 불안과 우울에 빠지지 말아야 함을 보여주었다. 삶의 혼란 속에서 굳건히 살아가는 모습을 배웠다. 젊은 베르테르는 죽었지만 자살은 그에게 있어 마지막 안정이었다. 알베르트와 달리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내 마음씨만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오.
로테를 향한 마음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씨와 능력을 뜻한다. 정보사회에 살고 있는 난 누구나 아는 지식을 뽐내려 하지 않았던가?
"나는 하늘의 물방울로 그대를 적셔 주노라."라고,
그러나 내가 시들어 버릴 때도 가까웠노라.
내 잎사귀들을 떨어뜨릴 폭풍우는 가까이 불어오도다.
내일이면 찾아오리라, 일찍이 내가 젊고 아름답던 지난날의 나를 본 나그네를......
그는 나를 찾아 벌판을 헤매리라.
그러나 나를 찾아내지는 못하리.
베르테르의 심정이 시 속에 너무 잘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에게 폭풍우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스스로 아름답고 젊었던 그 날에 나를 놓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이지, 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그의 자살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수학적인 기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다. 계층을 나누며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그 모습을 비난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지 못하는 모습과 숨겨야만 하는 비애를 나타낸다.
많은 어구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깝긴 하지만 이 책이 아직도 읽히는 이유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를 향해, 젊은이의 죽음은 절망이 아닌 자유를 위한 비상이었다.
괴테의 글로 인해 현재의 반자유를 얻었다. 나는 이제 그 비상을 죽음이 아닌 진정한 비상으로 표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