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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못한 선물
dancer on the keyboard
2024. 3. 16. 16:30

그림을 그린 지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실력이 드러날까봐 한번도 누구에게 선물을 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기회 되면 애정을 매 붓칠마다 더해 하고 싶었다.
불곰의 집에는 샤머니즘을 관철하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그에게 그림을 선물하고파 몇 달 전부터 시작한 그림은 헤어진 다음날 완성됐다. 이 어찌나 어이없는 아이러니인가.
사랑을 확신하고 그 애정을 퍼붓겠다 마음을 먹자마자 다음날 헤어졌다. 재밌는 인간이다.
늦었음을 자책하진 않는다.
이제는 그에 대한 사랑을 당신의 행복에 대한 응원과 나보다 덜 아프길 기도하는 걸로 돌리기로 했다.
사랑이란 감정의 형태를 이렇게 바꾼다고 한들 여전히 마음 한켠에 있겠지만, 이 그림과 같은 물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가 떠오를 것 같고, 처음 이 그림을 시작하며 설레하던 내가 떠오를 테고, 헤어지고서 엉망이 된 내 마지막날의 붓칠이 떠올라 그 붓칠 하나하나에 미안함과 사랑과 잡아주기를 바라던 애타던 그 감정을 꾹꾹 숨긴 게 그려져 이 그림을 볼 수도 버릴 수도 그렇다고 선물을 할 수도 없다.
내 마음 이제는 괜찮다 싶을 때까지 이 그림은 종이에 감싸져 열어볼 수 없을 듯 하지만, 그 때가 온다 하더라도 이 그림엔 사랑과 슬픔 모두 담겨 있을 것 같다.
욕심 내 그에게 선물로 보내고 싶지만 그 욕심 상대가 원치 않을 욕심이기에 글로나마 마음에 위안을 삼는다.
그림이 무슨 죄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