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2. the end of an era - 사랑은 그 자리에
Pros and cons를 찾다 드디어 어린곰과 재회했다. 약속장소에 가기 전 여태 내 마음을 살폈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어떤 답도 나오지 않는다.
그 녀석다운 시간 개념 덕에, 나는 자리를 떴고, 내 손에 쥐어진 편지라도 남기고자 다시 약속장소로 가던 길에 어린곰과 마주했다. 서로 최적의 길이 아닌 우회하는 길이었는데 거기서 마주할 게 무어던가.
서로 다시 사귈 지 말 지 그 마음을 모르겠다. 그를,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아는데 열심히 다시 열렬히 마음을 줄 자신은 없었다.
마주하자 마자 눈물보가 터졌고, 서로가 필요할 때 서로가 옆에 없어서, 도움을 달라고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외칠 수 없었던 날들을 내뱉었다.
우리는 함께 할 때는 한 번을 나눠본 적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결혼과 같은 연인에게 생기는 그런 이벤트를 말할 수 있었다.
그와 나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부담을 줄까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된다면 너와 결혼을 하고 싶다, 결혼을 한다면 너랑 할거다 와 같은 이제는 의미 없는 말로 우리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웃었고, 그 타이밍조차 5년 정도 후라는 게 서로 맞아서 이게 뭐니 하는 표정으로 울고 웃었다. 우리는 그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시간적 우연과 상대에 대한 약속에 기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 많은 말을 했지만, 그는 헤어지고 나서 내가 한없이 울었다는 걸 안 믿었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확히는 그가 사랑하는 방식과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라, 내가 이별의 아픔을 오롯이 느꼈다는 말에 그는 마치 위로라도 받은 듯 엉엉 울었다. 나는 되려 내가 사랑을 많이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에 너무 미안함에 또 눈물이 났다.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아무리 서로 마음이 약해지고 주변에 신경을 쏟고, 다투고 하더라도 '우리'라는 끈을 놓아버린 건 나니까,
'우리'를 믿어주지 못한 이기적인 나를 용서하라고 했다.
그에게 진심으로 또 사과를 했다.
내 마음이 항상 100이었으나, 내 표현이 100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내 마음도 100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나의 한계치라는 걸 그에게 말해줬어야 했다. 진작 말해줬어야 그가 안심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 만났으면 좋았을 거 같다고 한다. 아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만나면, 더 성숙해져서 만나면 좋을 거 같았다고 한다.
그가 사람도 잘 못 챙기고, 성숙하지 못하니까 상처를 많이 줬을 거라고 한다. 그에게 지금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났고 항상 좋은 친구라고 나는 답을 한다.
그와 나는 서로가 필요한 순간, 서로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러지 못했던 날들에 서로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울었다. 언제든 연락해도 될 관계인데 이리 지나가는 행인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다니 슬프지 않을 일이던가.
그는 내게 여러 명 더 만나고 오라고 한다. 그 동안 그는 성숙해질 터이니 그러라고 한다. 예뻐서 예쁜 미소를 안 띌 수가 없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연애에 대한, 상대에 대한 마음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항상 무서웠고 난 조용히 이별을 준비했었던 거다. 그도 알고 있다. 나와의 연애에 대한 마음은 사라지고 있고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확신을 갖고 마음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매일 다른 생각이 들 터이고, 오늘은 보고 싶다가 내일은 아닐 때도 있고 할 텐데 그건 '사랑'하기 때문인 거고, 하지만 책임을 지는 연애는 다른 일이다. 돌이켜 보면 그땐 권태기가 맞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보다 주변이 좋았고, 연인관계에서 행할 마음과 책임을 어떻게 해서라도 줄이고 싶어했다. 권태기라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여유로웠을까. 그럼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현재 이 관계에 대한 마음은 조금 줄어들었어도 서로의 사랑에 약속하고 믿어봤을까? 지혜롭지 못한 날 탓한다.
그에게는 모든 게 새로웠을 텐데, 내가 좀 더 지혜로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건 나 또한 언제나 새로운 아직 어린이에 불과하기 때문일 테다.
우리는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서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맨정신으론 날 못 만나겠다며 술까지 마셨으니 말이다. 나 또한 그를 만나면 이러든 저러든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려고 했다. 어찌됐든 한번 더 시도해보자 했지만,
서로가 너무 아팠고, 이렇게 아플 때는 만날 수 없다는, 나 또한 제대로 된 선택을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역시 그에 대한, 혹은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기에는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 상태인 것이었다.
그 또한 명확히 마음이 사라졌단 걸 알았다고 했다. 몹시 씁쓸한 말이었지만 참 이뻤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책임질 수 없다. 서로 연애를 하면서 마음을 주고받기는 어렵다. 나는 그의 말에 서로 마음이 사라지고 있단 건 예전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사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거라고 했다. 널 사랑했고 언제나 사랑할 거라고.
웃긴 말 같지만 내가 내린 정의는 그렇다.
그에 대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그가 그립지 않고 그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게 아니다. 이는 똑같다.
단지 연애라는 서로의 마음에 대한 책임을 지닌 관계로 함께 하기에는 우리의 마음과 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다시 만날 너와 나란 친구가 그때의 우리가 아니어서도 아니고, 그저 서로의 마음에 책임을 질 때가 아니어서다.
정말 관계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closure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단어일 줄이야.
너와 날 붙잡았던 연인이라는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리 씁쓸할 수가 없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과 서로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지만, 연인관계가 될 순 없다는 생각에 이리 마음이 아플 줄이야.
당연히 이 만남 이후에 씁쓸함으로 마음 아프지만 빨리 지날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이 아프니 몸살이 오나보다. 이 몸살이 낫고 나면 내 마음도 더 단단해지겠지.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우리의 관계는 이제 끝이 났다.
이렇게 이번 관계가 끝났다는 걸 인정하려니 마음이 아프다. 이는 끝났다는 서로 더는 노력하지 않겠다는 사실에 대한 아픔이겠지만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가 바라던 그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거다.
우리 성장해서 찬란한 그 미래, 여름날에 마주하자. 그때의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하고, 마음의 상처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서로를 위해 웃어주며 5년 뒤와 같은 먼 미래도 얘기해 볼 수 있는 더 끈끈한 선으로 이어진 우리를 기대할게.
나만의 어린곰,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