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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내가 하는 사랑

오래 만나던 아기곰 같던 친구와 이별을 했다.

공식적인 연인이 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그 당시 나는 여전히 저자세로 방어태세로만 지냈기에 더 많은 시험을 했었다. 그때의 그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련하고 미안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손을 잡았는데, 그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도 할 틈 없이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았다.


2년 넘게 아기곰의 사랑을 받았다. 과분할 정도로 대단한 사랑이었다. 그도 인간인지라 내가 싫을 때도 있고, 부정할 때도 있었을 건데 단 한번을 티내지 않았다.
그는 그런 친구였다. 본인의 사랑에 진심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친구로 나의 세계를 확장하게 해줬고 서로 응원하며 사랑으로 힘든 시간을 묵묵히 지켜줬다. 그를 통해 넓어진 세계 덕에 나는 예전보다 한층 더 단단해졌다.

이별을 앞두고 헤어지기 전부터 날 향해 달려오던 그 사랑스런 목소리와 얼굴의 그가 그리웠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그리웠었다. 그 볕 좋은 날의 사랑하는 우리가 현재와 대조돼 더 씁쓸했었을지도.

연인이 된다는 건 제3자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표정, 몸짓으로 새로운 언어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이제는 그 언어가 소멸돼버렸다는 사실은 헤어졌다는 사실보다도 너무나 몸 속 깊게 뿌리내려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언어체계를 모른 척 없던 척 해야 한다. 어디로 소실된 걸까?

이별을 결심했던 그 때는 그의 무한한 사랑이 이제 유한해 한때의 그 무한한 사랑으로 덮었던 상대에 대한 싫은 부분을 더 이상 덮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때다. 그리고 이해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지, 내가 바뀔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때다.
그때만 해도 내 잘못은 생각하지 않았다. 잘못이라면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는 그 부분을 사랑으로 등가교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이제는 안다.
나 또한 그대에게 수많은 잘못을 반복했고, 한없는 사랑을 요구했던 그에게 내 마음의 끝이 들통날까봐 사랑을 아꼈던 걸 안다.

이별은 언제나 겨울과 봄 사이에 있다.
봄은 기적의 계절인데, 그렇다면 내게 기적은 조금 더 성숙해지는 그런 계절인가보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를 다시 만난다는 건 너가 싫었던 걸 받아들이는건데 가능하니?”
계속 질문은 가능하냐 아니냐였다.
그러다 하나의 생각에 잠겼다.

내가 사랑하는 나란 사람이 그 아픈 행동을 받아들이는 게 나를 저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나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사랑을 해야 내가 사랑하는 내가 기쁘다면,
이는 가능여부의 질문이 아니다. 당연한 거다.

아마 나의 그 성미를 이 전보다 죽였다고 하더라도 그 성미는 여전할 거다. 즉 상대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없어지진 않을 거다.
하지만 전보다 성장했듯이 화내기 전에 사랑하는 모습으로 대화하는 법을 깨우쳤다. 다 나를 위해서다.

또 아마 이전과 같은 행동을 안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아는 것이다. 수없는 다툼으로 안됐지만 그 다툼의 결과에서 지금 이 봄의 계절에 기적처럼 우리는 서로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고 한번 더 웃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날 처음 만지던 네 어색한 손까지도 잘 기억할게. 서로가 어려서 하는 실수라지만 일신우일신하며 우리 더 나은 날 함께 웃으며 마주하자.

현재에 집중하며 찬란한 여름날 그 날의 우리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