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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의 편지, 사랑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예상했던 답이 있을 그 편지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마음으로 다짐을 하고 또 했는데, 그의 편지는 내 가슴을 떨리게 한다.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나쁜놈이라며 욕이라도 했을 텐데, 이젠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편지를 읽고, 그의 사랑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당할까 걱정하던 마음이 위로받을 뿐이다.

불곰에게서 온 답장은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하게 그의 마음이 꼭꼭 담겨 있어, 그 마음 내 마음에도 하나씩 모두 담고자, 편지가 끝이 나면 정말 끝이기에 더 천천히 더 신중하게 그의 글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끝이 있다. 

사랑이 온 건 공으로 온 거라 이 슬픔이 당연한 건데, 슬픔은 같이 나눌 수가 없다는 게 슬플 따름이다. 

친구의 친구의 케이스 혹은 티비에만 나오는 헤어졌다 다시 잘 만나는 그런 연인들을 보며 환상이 있었는데, 역시 그건 환상이었다 보다. 그건 아마도 불곰을 만나며 영롱하고 환상같은 날들만을 보내서 환상이 현실일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 같다. 어리숙한 생각이겠지만 새로운 챕터는 언제나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릴 거니까, 이전과는 다르게 서로를 대하겠지만, 분명 더 전개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이야기는 물론 즐거운 해피엔딩일거라고 믿었지만, 내가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헤아려도 그 심연의 끝에 당도할 수 있을까 싶다. 

편지를 쓰기 위해, 마음을 결정하기 위해 많이 애썼을 그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나를 웃게 만든다. 그의 위트가 부럽고 멋지고 고맙다.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 감정이 한동안 멍울처럼 오래 갈 것 같아, 그만큼 나 또한 많이 보고 싶을 거다. 
그의 말장난도, 귀여운 몸짓도, 날 향하던 애정스런 눈빛과 행동까지 말이다. 그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할 기회는 스스로 박탈해 직접 전하진 못했지만 사랑한다고 그의 가슴에 손을 대고 뜨거운 내 사랑의 고백을 해주고 싶다. 

한동안 스스로를 돌보겠다는 그의 다짐에, 나는 응원을 보낸다. 그가 더 멋진 사람으로, 더 멋진 남자가 되길 응원하고, 나 또한 그에 상응하는 (분명 더 멋져서 사랑하고픈) 사람이 될 거니까, 서로 자기의 자리에서 이젠 응원을 할 수 밖에 없다. 할 수 밖에 없는 게 이뿐인 걸 슬퍼해야 할까, 혹은 이렇게라도 응원할 수 있는 우리의 인연을 감사해야 할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것엔 용기를 가져야 한다길래 용기를 가졌는데, 이제는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인내를 가질 차례다. 성미가 급해 인내심이 부족한데 큰일이다. 내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사리가 부족했던 것일까 혹은 무식한 용기만 가진 걸까. 참아내는 것도 용기라는데, 이제 나는 다른 면의 용기를 내야겠다. 대신 조금만 슬퍼하고 아파하자.

불곰과 나는, 우리는 이제 서로가 어떻게 사는 지 알 길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는 게 당장엔 다행이다 싶다가도 슬프기도 하다. 그의 흔적을, 나의 흔적을 마음을 따라서만 살필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고,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그의 살내음을 맡고 싶을 때 나는 추억을 더듬기만 해야 하는구나, 그의 미래의 행보에 대해 무엇이 될 진 몰라도 응원해야 한다는 게 당장엔 그를 잊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선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만난 거고, 언제나 서로의 흔적이 함께 할 거니까 하며 그를 살펴본다. 유연천리래상회, 무연대면불상봉 이라는 말도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그 와중에 그렇게 만났지 않는가. 

봄이 오긴 오나 보다. 겨울에서 봄이 오면 이 예민한 기질은 더 없이 발동하는데, 날씨에 예민하다는 그의 나는 한동안 햇살이 싫을 것 같다. 

여름 내음이 시작될 즈음엔, 각자 잘 지내고 있다고, 이제는 스스로의 상처를 많이 돌봤다고, 서로 안부 인사 주고 받을 수 있는 날을 바라며, 그와의 마지막 포옹을 떠올려본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그를 대하려 했는데, 역시나 여행지가 좋아지면 정착하고 싶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뜨거운 열정의 불곰과 만들었던 공간을 나의 사랑이라는 마음의 공간 한켠에 이제 두고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한다. 

답답한 새벽에 취할 위로가 곧 멈추길 바라며, 늦봄 라일락 필 때쯤엔 모두가 좀 더 성숙해져있기를 바란다.

사랑에 빠지기 좋은 여름날 밤부터 행복했다. 나의 젊은 오빠 불곰, 안녕

https://youtu.be/sCq7Lccu-XQ?si=7NX1IYeOGU5C5y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