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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음


여름향기라고 쓰려다 여름향기보단 여름내음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혹은 여름냄새든지. 

여름향이란 말도 있긴 하구나. 


나는 은은한 향을 뿜어내고 싶은 사람이지만 스스로 봄이나 가을보다 여름이나 겨울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언제나 여름과 겨울과 같이 뚜렷한 성격의 계절은 내게 큰 행운을 줬었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 계절에 더 열렬히 반응하고 행복해 하기 때문이겠지. 


아직 여름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날씨가 이상해 아직 많이 춥지만 그래도 신체에서 땀이 나기도 하고 벌써 패디큐어를 하고 있으니, 여름은 여름이다. 

여름은 내 계절이다. (모두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난 그 더운 땡볕의 여름이 참 좋다) 


그래서 작년 이맘 때가 참 떠오른다. 아직은 봄이 지나길 아쉬워하고 여름은 봄을 시샘해 얼른 다가오려 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그렇게 만났었다. 사실은 원래도 알고 있었지. 


생각하면 내가 여태 만난 연인은 모두 여름이나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극단적인 나답다. 


너를 참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먹고 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저 그랬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생각하지 못한 만남과 생각하지 못한 전개. 서로를 알게 되는 행운.

기억력이 남달리 좋아(미드 Suits의 마이크만큼은 아니지만) 그 순간들이 참 잘 기억난다. 특히나 여름이 다가왔기에 그 여름냄새, 여름밤냄새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신의 기운은 없어 내가 생각하는대로 될 것은 아니겠지만 그냥 아주 어쩌면 이란 생각이 오늘 갑자기 들었다. 우리가 갑자기 만났던 것처럼. 

그리고 아주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데, 혹은 아주 생각하지 않으면 이뤄지기도 한다는데 

아마 둘 다 해당하는 듯 하다. 


여름이다. 벌써 여름이라고 칭하고 싶은 이유는 

여름을 열렬히 사랑하는 나이기에, 그래서 그 여름은 보답하려는 듯 내게 행운을 가져다 주기에, 여름이라는 이름 하에 내가 예상하든 예상치 않든 좋은 일들이 쏟아져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름이 참 좋고 여름에 만났던 그 인연들과 좋은 추억은 잊을 수 없다. 왜냐면 겨울과 달리 여름이 주는 그 냄새들, 여름 바람

여름 바람은 특히나 특유의 냄새를 함께 동반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여름이 오면 여름의 냄새와 땀, 바람, 온도, 습함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아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 국한해 나는 여름의 추억을 기억한다. 어느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듯(브라운아이즈의 비오는 압구정이 대표적), 여름은 나를 여름 추억으로 데려간다. 


나와 여름을 함께 했던 그 많은 시간과 추억과 사람들이 모두 한 번 쯤은 그 여름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감싸는 그 여름내음에 나를 기억해주고 미소지어줬으면 한다. 


우리는 어쨌든 그 황홀한 여름을 함께 했으니까. 

오 월 끝자락에 마주했던 여름과 여름의 기운이 내게 준 우리의 첫 추억을 나는 오늘 갑자기 기억해본다. 

우리 꽤나 좋은 여름을 함께 했고 함께 하는 그 모습이 꽤 맘에 들었다. 


여름냄새가 내 코를 내 모든 신경을 건드린다. 기대되는 올 여름이다.


- 일하기 싫은 오후, 2017.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