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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비대칭성

관계에서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하는 건 쌍방에 대한 의존성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정보비대칭이 심할수록 서로에게 기대하는 애정에서 더 큰 상심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주 간단하게는 혈액형에서부터 시작가능하다. 

말을 했을 수도 있고, 묻지 않았을 수도 있고, 묻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데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상호 간 보유하고 있는 상호정보의 비대칭은 자라나고 있는 애정과 또한 비대칭을 이루게 된다. 


취향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취향이 있을 것이고, 그런 취향을 인지하기엔 무지하다면 

궁금함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궁금해 하고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기를 바라는 전제 조건 하 관계를 지내고 있으니. 

물론 궁금증을 밝힐 수 없을 수도 있다. 상대가 취향도 모르냐고 울상이 되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혹은 그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계를 시작하는 시점, 우리는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자 한다. 

대학때 배웠던 사회적침투이론(Social Penetration Theory, SPT)가 떠오르는 건 무엇이더냐. 

가장 초기에 우리는 사회적으로 통용가능한 범위의 '다양한' 정보를 묻고 서로 공유한다. 가장 겉의 양파껍질이 벗겨지듯이. 

중심 핵으로 들어갈수록 주변인과 쉽게 공유하지 않는 깊이 있는 정보가 있고, 그 정보는 절대 알 길이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최측근에게만 이를 알릴 수도 있다. 

마침 그가 가장 최초에 한 말이 떠오른다. 

"난 너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그러하다. 나는 상처받기 싫은 기제가 강한 동물인지라, 내 정보를 아주 쉽게 물으면 답하되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가끔 신기한 건 사회적으로 쉬쉬하는 정보는 내겐 쉬쉬할 필요가 없는 정보이기도 해서, 그 정보가 너무 어색한 사이임에도 공유되고 나면 상대가 부담을 느끼기도 혹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런 정보폐쇄지향적인 나와 관계를 가지려니 어찌나 힘들겠는가. 

나 스스로 정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도 말하면 되지만 그럴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고, 그러면서 상대 중심의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허나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점에 대해선 꽤나 큰 상실감을 가지는 골치아픈 여인네이다.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는 '내'가 없다는 생각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너와 내가 만나 우리라는 관계가 만들어지니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 '우리' 라는 이야기 속에 너를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건 꽤나 속상할 법하다. 

언제 그러냐 한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진행할 때 '너'와 관련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려 하면 우리는 할 얘기가 없다. 그 동안 궁금했던 너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얘기가 지나고 나면, 내가 존재하는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나와의 관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언젠가는 나를 알게 되는, 그게 참으로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만 알려주는 한라산도 아닌 백두산 정상에 위치한 여자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정보비대칭성이 두드러지는 순간들은 언제나 '선물'과 관련있다. 

친밀감이 낮은 관계에서 우리는 소모지향적인 선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는 선물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게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상대의 취향을 참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모지향적 선물 또한 소모하기 위한 취향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싫어하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지 않던가. 싫어하는 향수 또한 마찬가지이고. 이런 향수는 탈취제로도 사용치 않는다. 


그러기에 그의 최초의 선물은 참으로 고민할만한 선물이다. 

나를 잘 모르기에, 백일이 지나고서야 내 혈액형을 알게 됐으니. 

요즘 헬쑥해져 안타까운 어깨 넓은 하얀 피부의 그가 최초에 술에 취해 한 말이 또 떠오른다. 

'나는 너를 몰라...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그러니 말해줘.' 

술기운에 한 서운한 말이었고 그 당시 내 행방을 몰라서 발을 동동 굴렸던 그인지라 그런 말을 했지만 그가 나를 안다고 생각하고 이제 나를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안주한 자리에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서로 그 길이가 참 다르다. 


정보대칭이 이뤄지는 날을 기대하는 날 보면서 어쩌면 우리 관계는 정적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안에 너와 내가 절묘하게 잘 합쳐져 있는 그림처럼, 

유리를 좋아하는 하얀 너를 따르면 한 번에 만들어지는 좋은 와인잔과 같은 '우리'를 기대해본다. 

그의 다음 선물이 내심 기대된다. 

 

- 그가 최초로 선물한 쥴리크 로즈향 핸드크림을 바르며, 201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