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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 햇살에 설레는 날이 많기를

절기상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 지났다. 이제부터는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진다. 
정말로 '새해의 찐막'이고 더 이상 하려던 걸 미룰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이렇게 치자면 나의 연애는 23년도에 끝이 난 셈이다(?).
 
이제부터는 낮이 더 기니까, 그만큼 햇살을 맞이할 날이 많아진다는 의미니까, 그 만큼 밝은 날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성이 좀 더 지배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한가? 밤은 감성의 시간 아닌가) 
억겁의 시간이 지난 것과 같지만 사실 며칠 지나지도 않은 혼자의 시간과 그 일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과 새로운 일상을 억지로 구겨넣듯 하긴 했지만 내 호흡을 꽤나 잘 찾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여러 달에 걸쳐 만들어진 둘만의 일상인데 이 일상이 바뀌는 게 참 아쉽고 그래서 붙잡게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사라져있는 걸 보면 그 정도 사랑이었나 싶다 먹먹한 감정이 차오르고 만감이 교차한다. 분명한 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왜냐면 여러 경험과 교감을 통해 만들어진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르지 않은가. 

괜찮다는 말을 하면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한 듯, 기분이 가라앉는데 (슬프다, 보고싶다와 같은 차원을 넘어선) 그러면 미소지어본다. 몇 번의 이별로, 여전히 익숙할 순 없지만 방법은 알고 있고 (이 방법 내 마음에 와닿기는 오래 걸리지만 하하), 더 성숙해진 내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긴다. 

춘분이 지났다. 이제 낮이 더 길다. 
그럼에도 봄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다운되기 쉬운데 이럴 때는 봄 날씨 때문이라며 계절을 타는 걸로 모든 탓을 돌리고, '원인'분석과 '해결'지향적인 내 행태를 잠깐 놓아보려 한다. (친구는 나 따뜻한 날 좋아하니까, 좋다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 많은 변화를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예를 들자면 스티커사진은 여전히 냉장고 벽에 붙여둔다든지, 편지는 책장 앞에 놓여있다든지, 그런 변화는 천천히 다시 길어진 낮이 좋을 때, 혹은 봄날 햇살이 좋을 때로 미뤄보려 한다. 대신 이제 정말 최종 버전의 새해니까, 미룰 수 없었던 마음 먹은 일들을 하며 나를 정제하고 정화해보자. 
흘러가는 걸 못내 아쉬워 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나의 또 다른 결이 생겨 더 성장한 내가 되었고, 더 큰 그릇의 내가 되었다는 점을 인지하며, 덧붙여 나 스스로가 얼마나 고마운지를 다시 느끼며, 길어진 낮의 길이를 맞이해보자. 쉽지 않지만 쉽지 않으니 재밌는 게 인생 아닌가. 낮이 길어져 이제 다시 불면증이 심해지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내꺼니까 비밀스럽게 조용히 생각하고 돌아보고 회개하고 애도하고 다짐하고 애도할 수 있다 싶어 좋다.

이성을 지배한다는 낮이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 날씨 때문에 세상이 설레게 느껴지기도, 세상에 염증을 느끼기도 할 거다. 그래도 긴 밤보다는 긴 낮이 더 좋지 않겠는가.  
햇살에 빛날 생각에 설레인다. 그래, 벌써 수영장에서부터 남정네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지 않는가 풉, 다 낮이 길어져서라고 생각하자 풉
젊은 오빠에게도 낮의 길이가 긴 덕분에 그 햇살로 더 빛나길 바라며, 나를 만든 모든 인연에게도 비타민 메가도스하시길 바란다.